어둠에 벼려져 예민해진 감각으로 세상을 더듬으면,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과 마주할 수 있다. 도시의 가로등 불빛에 묻혀있던 달무리,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갈 곳을 잃었던 따스한 손, 싸라기눈처럼 소리도 없이 내려앉은 감정의 이름.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듯한 보랏빛 하늘에서는 살얼음 냄새가 났다. 산속에 내려앉은 밤공기는 두드러지게 차가웠다. 키스는 추위를 달래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발을 굴렀다. 두 번째 방문한 디노의 본가는, 반소매를 입고 놀러 왔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매서운 바람을 맞고 있었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노부부는 첫 번째 방문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음식과 잠자리를 내어주었지만, 친절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남은 망설임 탓인지 키스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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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천사가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한다면 나는……. 트레이닝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김에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AA가 다 뭐냐. 승격 시험 준비하다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타워 밖은 아직 꽤 더웠어도 트레이닝룸은 격하게 움직이다가 더위 먹어 쓰러지는 놈들이 없도록 늘 적절한 온도로 냉방이 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워 열기를 식히는 행위가 무색할 정도로, 온몸에서 줄줄 새어나가는 땀은 멎을 줄을 몰랐다. 그뿐인가. 급기야 시야가 흑백으로 번쩍이더니, 눈앞에 거대하고 흰 날개를 펄럭이는 무언가가 아른거렸다. 후광이 지나치게 밝은 탓에 되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에서 흔히 나오는, 천사를 표현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정면으로 뙤약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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