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디노키스] 천사의 부름

알잉뽀 2021. 9. 11. 21:57

 

 

 

 

 

    만약 천사가 한 가지 소원을 이루어 준다고 한다면 나는…….

 

 

 



    트레이닝룸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진 김에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AA가 다 뭐냐. 승격 시험 준비하다가 당장 죽게 생겼는데.

 

    타워 밖은 아직 꽤 더웠어도 트레이닝룸은 격하게 움직이다가 더위 먹어 쓰러지는 놈들이 없도록 늘 적절한 온도로 냉방이 돌고 있을 터였다. 그런데도 차가운 바닥에 드러누워 열기를 식히는 행위가 무색할 정도로, 온몸에서 줄줄 새어나가는 땀은 멎을 줄을 몰랐다.

 

    그뿐인가. 급기야 시야가 흑백으로 번쩍이더니, 눈앞에 거대하고 흰 날개를 펄럭이는 무언가가 아른거렸다. 후광이 지나치게 밝은 탓에 되레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가상의 세계를 배경으로 만든 작품에서 흔히 나오는, 천사를 표현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정면으로 뙤약볕을 쬐는 것만큼이나 눈이 부셔 나는 이마에 손을 얹고 물었다.



    “뭐야, 나 죽었어?



    실내에 냉방이 돌고 있다고 해도 이 염천에서 훈련을 강행한 건 위험한 행동이었지. 그렇다고 해도 체력이 평균 이상은 될 텐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훈련을 하다가 죽어? 나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책임을 누군가에게 떠밀고 싶어졌기 때문에 일단은 날씨 탓을 해보았다.



    천사는 말했다.



    죽기 전에 소원을 하나 이뤄줄게.



    천사는 내 물음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제법 친근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나 진짜 죽는 거냐고.



    나는 맥없는 목소리로 혼잣말처럼 대꾸하곤 내 발언에 속으로 빈정댔다. 죽긴 뭘 죽어. 잠깐 더위 먹고 쓰러진 거겠지. 정말 죽은 거라면 소원을 빌어봐야 다 무슨 소용이냔 말이다. 그나마 저승사자가 아니라 천사가 데리러 오는 환각이어서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래, 어차피 꿈인지 환각인지라면 모처럼 무리한 부탁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싶었다. 승격 시험 준비하기 힘들어 죽겠으니까 이대로 메이저 히어로가 될 때까지 노력 없이 합격시켜달라고 할까?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을 때마다 돈이 쏟아지게 해달라는 소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지, 그런 쩨쩨한 소원을 빌 바에야 저축해놓은 돈을 오천 배 불어나게 해달라고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그것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


    누구나 그런 건지 나만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사실 단 하나의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면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지금이 행복하냐고 물으면, 낯부끄러워서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하지는 못하더라도 굳이 지금 이상의 사치를 부리고 싶은 마음은 크게 없었다.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이렇게 지낼 수만 있으면 남이 보기에 그저 그런 인생이라도 딱히 상관없었다. 그럼 차라리 앞으로도 평온하게 살게 해달라고 말이나 해봐?

 

    너무 시시하고 진부한 답변인가. 나는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평화로운 일상은 키스의 손으로 쟁취해내는 것!

 

    뭐?

 

    그러니까….



    천사는 내가 운을 떼자마자 내 말을 끊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와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운 것이 뺨에 닿았고, 그 감촉에 놀란 나는 그대로 눈을 뜨고 말았다. 

 

 


    앗, 차거!

 

 

 

    흐린 눈을 깜빡일 때마다, 후광때문에 보이지 않던 천사의 얼굴과 나를 내려다보는 낯익은 미소가 겹쳐 보였다.

 

 

 

    승격 시험 힘내, 키스!

 



    정신이 제대로 들자 번갈아 보이던 천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디노가 내 뺨에 차가운 음료수 캔을 갖다 대며 씨익 웃고 있을 뿐이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