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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키스] 블루 하와이의 바다

알잉뽀 2021. 8. 15. 01:21

 

 

 


    키스는 추락하고 있었다.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나마 등 쪽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미루어볼 때, 지금 시야에 담긴 풍경이 위쪽일 터였다. 그렇게 멋대로 하늘이라고 정의한 저편은 거품 토핑조차 올리지 않은 딸기라떼 색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무척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는 것 치고는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황에 비해 긴박감이 전혀 없었다. 보기만 해도 혀끝이 달짝지근해지는 분홍색 하늘 탓일까. 아니면 얼굴에 닿는 바람이 애정이 어린 숨결처럼 뺨을 간질이기 때문일까.

    도무지 현실감을 찾을 수 없는 풍경에 키스는 되려 평온해진 마음으로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렇지, 방금까지 침대에 누워서 내일 있을 성가신 조별 과제 모임에 대해 생각을 했었다. 우연히 같은 조가 된 디노는 뭐가 그리 기쁜지 들뜬 얼굴이었다.

 

    아마 키스는 그런 시답잖은 생각이나 하다가 잠이 들었을 것이다. 벌써 디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귀찮다고 내빼면 짐짓 매서운 얼굴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또박또박 부르겠지. 적당히 자료를 뒤적이다 뭐라도 얻어걸리면 별것도 아닌데 목소리 톤을 높여서 키스는 대단하다는 둥, 역시 열심히 하면 뭐든 잘한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면서 나를 띄워줄 거고. 피곤하다, 피곤해……







    풍덩.







    온몸을 휘감는 부드러운 충격과 함께 바람이 멎은 듯 덜컥 주변이 조용해졌다. 물에 빠진 것을 자각하고 나서야 보글보글 거품 이는 소리를 들었다. 몸이 순식간에 식는 느낌이 들었고, 제법 높이서 떨어졌기 때문인지 손끝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압력이 키스를 짓눌렀다. 다만, 숨을 쉬어도 괴롭지 않았기 때문에 키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깊이와 넓이로 추측하건대 강이나 호수의 규모는 아니었다. 방금까지 보던 분홍색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밝은 청색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마실 수 있다면 목구멍까지 상쾌해질 것 같은 푸름이었다. 오히려 이쪽이 하늘에 가까운 색이지 싶었다. 바다생물 따위는 보이지 않았지만, 매우 깊은 곳까지 따뜻한 빛이 새어 들어와 아늑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키스는 전신에 힘을 빼서 가라앉았던 몸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몸이 살짝 가벼워지자마자 정신없이 팔다리를 휘저어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물 위로 얼굴을 내민 것까지는 좋았으나, 정말로 바다 한가운데에 뚝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몸을 건질만 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수영을 할 줄 알아서 다행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키스는 입술에 닿은 물기에 입맛을 다셨다. 놀랍게도 바닷물인 줄 알았던 액체에서는 여러 과일이 섞인 음료에 알코올이 더해진 맛이 났다.

 

    칵테일? 나이는 둘째 치고, 성인이 된다 한들 술을 마실 마음이 없는 키스는 알코올 향에 혀를 내밀고 인상을 구겼다. 단맛이 나는 술이라니 최악이었다.

    어쩐지 바다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파랗다 했지. 키스는 손으로 칵테일을 떠냈다. 본 적 없을 정도로 맑은 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제도 본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키스는, 이것이 꿈이라면 내일 꼼짝없이 얼굴을 마주해야 할 디노의 블루 하와이 색 눈동자를 떠올렸다. 

 

 

 

    거기서부터 별안간 그가 억지로 들이밀던 게임의 배경음악을 떠올렸다. 그가 여행을 갔다가 기념품으로 사 온 별난 무늬의 티셔츠를 떠올렸다. 피자의 맛과 짭조름한 토마토소스 냄새를 떠올렸다. 함께 나눴던 실없는 대화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자기에게 내밀어준 손을 떠올렸다. 자꾸만 귀에 감기는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키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겠지. 



    한층 강해진 단내와 알코올 냄새에 정신이 얼떨떨해졌다. 키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세상이 떠나가라 한숨을 쉬었다. 얼른 이 따사로운 봄날 같은 꿈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랑에_빠졌다를_자기문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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