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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키스] 황혼의 세레나데

알잉뽀 2021. 7. 31. 01:28

제대로 된 글로 쓰고 싶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신내림이 안 와서(?) 그냥 썰로 남은 얘기…ㅠ_ㅠ
오스! 의 디노키스. 방과후 음악실 로맨스 (아직 안 사귐)


평소에 오스! 세계관 얘기 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둘이 동거하는 얘길 많이 쓰는데 여기에서는 동거도 안 하고(같은 동네에 살긴 함) 아직 사귀지도 않음.

방과 후, 건물 안은 학생들이 빠져나가서 조용한 상태이고 간간히 운동장에서 운동부원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저녁에, 디노가 키스한테 ‘오늘도 잠깐 듣고 갈래?’ 하면서 키스 팔을 잡아끄는 거예요.
만약 디노가 가자는 곳이 피자가게이거나 야구경기장이었다면 키스가 한 번 만류했을 법도 한데, 키스는 딱히 불평 않고 디노가 향하는 곳으로 같이 걸음을 옮겨줌.

디노가 키스를 데리고 간 곳은 음악실이었고, 사실 디노는 종종 방과 후에 키스를 앉혀놓고 피아노 연주곡을 들려준다는 설정.
굳이 비밀로 할 필요는 없어서 종종 교내에 남은 사람들도 같이 와서 들을 때가 있음. 누군가가 오지 않는다면 둘만의 시간이 되는 것이고.

키스는 피아노 소리 자체에는 그다지 큰 흥미가 없었고, 피아노 연주곡도 아는 게 많지 않아서 디노한테 뭘 연주해달라는 리퀘스트는 딱히 하지 않음. 그냥 그날그날 디노가 치고 싶은 곡을 같이 들어주는 느낌. 흥미는 없어도 좋은 음악을 들으면 마음은 가라앉으니까 퇴근하기 전에 한 번 듣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어차피 근처에 살아서 같이 귀가해야 하고.

종종 디노가 키스랑 같이 즐기고 싶다면서 키스한테 간단한 연주를 알려주기도 했는데, 키스는 악기 연주에 그렇게까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디노를 따라 주춤주춤 건반에 살짝 손을 얹어 본 것이 전부였으므로, 사실 디노의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인지 아니면 음악을 전공한 사람 평균인지 알 방법도 없었음.

그런데도 키스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디노의 연주를 듣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종종 피곤한 날에는 집에 안 가냐~ 하고 눈치를 주기는 하는데… 디노가 피아노 치고 싶다고 하면 같이 와서 피아노 치는 거 보다가 같이 돌아갈 것 같구.

피아노 옆에는 빛이 가득 들어오는 커다란 창이 있었고, 창으로 들어오는 노을빛을 받으며 피아노를 연주하는 디노는 평소의 모습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차분할 듯. 동시에 평소와 같은 여유로움과 즐거움도 묻어나는 천진난만한 표정일 것 같아요.

연주하는 곡은 대체로 밝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 곡이어서, 그야말로 디노다운 선곡이라고 키스는 생각함.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사랑을 주제로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느낌이 막연히 드는 그런 사랑스러운 곡들.

오늘도 마찬가지로 디노에게 불려와서, 키스는 학생들이 앉는 자리에 대충 걸터앉았고, 디노는 피아노 앞에 앉았음.
평소에도 키스 앞에서 몇 번이고 피아노를 쳐줬으면서, 그날은 유독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수줍게 웃는 디노.
그리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평소처럼 사랑스러운 곡이었지만 오늘은 왜인지 평소 이상으로 간질간질하다고 느끼는 키스.

경쾌한 멜로디에 익살스러운 기교도 드문드문 섞여 마치 디노 그 자체를 표현한 것 같았고, 디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색이 키스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았음. 디노의 손가락이 건반을 미끄러질 때마다 분홍빛 안개가 넘실대는 것 같았고, 거길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물론 키스는 이렇게 문과식으로 감상을 말하진 않겠죠. 아마 간질간질하다는 생각만 들고 이런 이미지가 머리에 흘러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음. 혼자서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다가 멋쩍게 고개를 훌훌 저어버리고, 디노의 손끝을 응시하다가, 그 시선이 손목에서 팔뚝으로, 어깨에서 얼굴로 향하고.

시선을 느낀 디노는 피아노에서 키스에게로 시선을 옮겼음. 그렇게 한 번 눈을 마주치자 디노는 끊임없이 키스랑 눈빛을 주고받으면서 키스의 반응을 살핌. 어쩐지 부끄러워진 키스는 음악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서 시선을 살짝 아래로 흘림.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표현한 듯한 낮은 음계의 스타카토가 자기 심장박동과 동시에 쿵쿵 울리는 걸 들으면서.

연주는 잠잠하게 막을 내리고, 디노는 의자에 앉은 채로 고개를 돌려 키스를 쳐다봄.

“어땠어?”
“잘 치네.”
“새삼스럽게? 하하, 고마워.”

디노는 늘 연주가 끝나면 키스의 감상을 묻곤 했는데, 음악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는 키스로서는 항상 제대로 된 감상을 돌려줄 수는 없었지만, 디노는 분명 키스에게 거창한 대답을 바라고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니었을 것임.
하고 싶은 말은 분명 있었는데, 보고 들은 것에 대한 감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음. 감상이란 형태가 없는 것. 정답이 정해져 있지도 않은 것. 디노의 연주를 들으면서 봤던 풍경을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그 환각 같은 것을 묘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애초에 키스가 그런 것을 줄줄 말로 표현하는 성격이 아니기도 했음.

‘잘 치네.’ 고작 한 마디로 감상을 끝낸 키스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듯이 입을 들썩이다가 말았는데, 디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먼저 입을 열었음.

“내가 만든 곡이야.”

그 말을 듣고 키스는 아까 연주를 들으면서 봤던 풍경을 다시 떠올렸음. 분홍빛 안개 속을 누군가와 같이 걷는 듯한 기분. 상대방의 얼굴은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디노의 말을 듣는 순간 그 누군가의 얼굴에 디노 얼굴이 덧씌워짐. 키스는 이런 마음을 디노한테 뭐라고 전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음.

디노는 쑥스러움을 웃음으로 만회하려는 듯이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오로지 키스에게만 들려주고 싶었다고, 자기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임.

그렇다면 자기가 디노의 연주를 들으면서 느꼈던 감정이 어쩌면 디노가 전하고 싶었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키스는 갑자기 디노랑 눈을 마주치기도 민망해졌음. 가슴이 답답한 것도 같았고, 머리가 띵한 것도 같았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도 같았음.

키스의 그런 반응을 한참 동안 말없이 보고 있던 디노는 곤란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집에 가자.”

하고 아까 음악실에 들어왔을 때처럼 키스의 팔을 잡아끌고 음악실을 나감.

그리고 그날은 유독 집에 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디노는 평소처럼 재잘재잘 키스한테 말을 걸었지만 어쩐지 목소리가 차분해져 있었고, 키스도 평소처럼 반응해주긴 하지만 서로 어쩐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는 건 알고 있음.

집 근처까지는 같이 왔다가 갈라지는 길에서, 디노가 다음에 또 시간을 내어줄 수 있겠냐고 물어봄. 평소에도 몇 번이고 키스를 데리고 음악실에 갔으면서 새삼스럽게. 그건 아마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관계에 변화가 생길 것을 염려해 묻는 것 같았음. 그렇게 오래 고민할 질문도 아니었는데, 키스는 마치 고백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잠시 굳어있다가, 이제 와서 뭘 묻냐고 대충 얼버무릴 듯.

그 대답에 안심한 듯한 디노가 ‘그것도 그러네.’ 하고 웃으면서 끝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뒤늦게 사랑을 자각해가는 로맨스가 보고 싶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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