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디노키스] 할로윈의 뒷편에서

알잉뽀 2021. 9. 4. 22:13






*거의 현대와 비슷한 배경인데 인간들 사이에 마물이 섞여 살기도 한다는 오묘한 날조가 들어가 있습니다. 주의!






둘은 알고 있다. 저들이 분장하고 있다고 한들, 유원지의 방문객들은 모두 자기들과 다르게 '진짜'라는 사실을.



시간은 오후 열 시 반. 할로윈 밤에는 연장 개장을 하는 유원지에 데이트를 하러 온 둘. 밤이라고는 하나 유원지의 화려한 조명은 눈이 부시도록 밤길을 비추고, 요란한 퍼레이드가 끊이질 않는다.

할로윈인 만큼 유원지 내부를 거니는 것들의 라인업이 심상치 않다. 좀비와 마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오싹한 웃음소리가 섞인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가게들도 저마다 할로윈 컨셉에 맞게 호박과 박쥐 모형으로 한껏 꾸며져 있고, 판매하는 음식들도 계절감이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디노와 키스도 몬스터가 돌아다니는 밤의 유원지에 걸맞은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화려한 모습의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리 눈에 띄는 편은 아니다.

디노와 키스는 되도록 다른 이들과 접촉을 피해 걷는다. 만약 우리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것이 들통난다면…….

키스는 제법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다. 디노는 조금 흥분한 기색을 잘 숨기지는 못하고 있다. 둘은 다른 이들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조마조마해지는 가슴을 붙들고 인파를 헤쳐 관람차로 향한다.

불꽃놀이는 이미 시작되었다. 관람차를 타고 한순간이나마 가장 높은 곳에서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행렬을 만들었으나, 불꽃놀이는 자정 넘어갈 때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므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몰려있지는 않다. 비교적 여유롭게 줄을 선 둘은 '진짜'들 사이에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린다.

디노와 키스는 관람차에 오른다. 흡혈귀가 둘의 표를 확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며 둘을 배웅한다. 관람차의 문이 닫히자 둘은 그제야 마주 보고 앉아 밖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관람차가 땅에서 점차 멀어진 뒤에 유원지를 내려다보니 퍼레이드의 화려한 불빛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트랙션에 오른 이들의 비명이 잠시 귓가에 머물다가 흔적도 없이 지워진다. 온갖 것들이 넘쳐나는 세상은 무척 활기차서 바라보고만 있어도 덩달아 흥이 오른다. 압도적인 열기가 쌀쌀한 밤을 데운다.

이윽고 둘이 탄 관람차가 가장 높은 곳에 달았을 때, 디노가 일어선다. 키스도 디노와 눈빛을 나누고 일어서서 입을 맞춘다.

입을 맞추는 순간, 온 세상은 전원이 내려간 것처럼 조용해진다.

방문객의 환호와 비명도, 불꽃이 터지는 소리도, 퍼레이드의 음악도 멎는다. 한창 예쁘게 터지고 있던 불꽃의 잔상이 밤하늘에 그림처럼 걸려 있다. 두 사람은 입술을 떼고, 아래에 펼쳐진 풍경을 확인한다. 정신없이 움직이던 것들이 모두 제자리에 정지했다.

디노는 날카로운 송곳니와 발톱을 드러내고, 정상에 멈춰 선 관람차의 문을 힘으로 비집어 연다. 오로지 둘만 남은 세계에서는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키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천~천히 내려가 보실까."

키스의 손끝에서 나온 밝은 녹색 빛이 디노의 몸을 감싸더니, 디노의 몸이 공중에 가볍게 떠오른다.

"롤러코스터만큼 빠르게 내려가도 괜찮아!"
"내가 멀미 난다고……."

'진짜'들의 할로윈이 끝나갈 무렵에서야 '가짜'들의 할로윈은 막을 올린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노키스] 오늘의 운세는  (0) 2022.05.08
[디노키스] 불안  (0) 2022.04.05
[디노키스] 잠 못 이루는 너에게  (0) 2021.08.26
[디노키스] 미래로 가는 길  (0) 2021.08.26
[디노키스] 네가 있는 우주  (0) 2021.07.3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