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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키스] 그런 아침

알잉뽀 2022. 3. 24. 00:44

 

 

 

 

 

   적막한 인생에 홀연히 나타난 인생의 반려자.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존재할 리가 없었다.

 

 

 

   “키스랑 앞으로도 계속 같이 있고 싶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키스는 잠결에 들려오는 익숙한 환청에 눈을 떴다. 꿈의 끝자락을 붙잡던 디노의 떨리는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귀를 간질였다. 천천히 눈꺼풀을 열어도 젖히지 않은 암막 커튼으로는 빛이 한 줄기도 새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에서 시간을 가늠할 도리가 없었다.

 

   꿈에서 깬 순간 이미 잠은 달아났지만, 키스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도로 눈을 감았다. 어차피 오지도 않을 잠을 다시 청할 생각은 없었다. 키스는 그저 홀로 뇌리에 생생하게 박힌 디노의 목소리를 곱씹었다.

 

   ‘전에도 꾼 적 있는 꿈’ 수준이 아니라, 최근 같은 꿈을 꾸는 빈도가 상당했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돌이켜 생각한들 변하는 것이 없을 이야기인데도.

   

   키스는 자세를 고쳐 똑바로 누운 채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생존을 위해 기껏 가족이라는 그림자에서 벗어났으면서, 더 큰 행복을 찾아 새로운 가족을 꾸리는 것은 모순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서 어떤 형태로 존재해야 정답인 걸까?

   

   잡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와중에 키스는 놀랍게도,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아버지의 얼굴 대신 디노와 그의 조부모님을 연상했다. 시간을 가리지 않고 안팎으로 흘러넘치는 요란한 웃음소리와 따뜻한 음식을 연달아 떠올렸다. 마지막으로, 꿈에서 들었던 디노의 수줍은 청혼을 되뇌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니 좀처럼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던 키스는 한참을 좌우로 뒤척이다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중얼거렸다.

 

   “왜 이제 와서…….”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오늘 같은 날까지 늦잠 잘 생각은 아니지, 키스?”

 

 

 

   드르륵 커튼 젖히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 해가 디노의 목소리만큼이나 기운차게 이불 너머까지 들이쳤다. 한창 감상에 젖어 있던 키스는 이불 안에서 디노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부름에도 대답이 없자 디노는 이불을 빼앗는 대신 오히려 이불을 뒤집어쓴 키스 위로 올라타 숨이 막힐 정도로 그를 꽉 끌어안았다.

 

   “키스~ 안 일어날 거야?”

   “윽!?”

 

   온몸을 고루 덮치는 성인 남성의 체중에 키스는 항복을 외치며 한참을 버둥대다가 디노가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침대 아래로 데구르르 굴러떨어졌다. 그제야 이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키스는 기운이 쪽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일어난다, 일어나.”

   “잘 잤어, 키스?”

 

   디노는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키스의 기상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늘 그렇기는 했지만, 오늘은 표정도 목소리도 평소보다 한층 밝았다.

 

   “결혼식 아침까지 늦잠이라니.”

   “일어나 있었다고.”

 

   최근 긴장과 설렘으로 잠을 설치며 프러포즈 받던 날의 꿈을 반복해서 꾼다는 낯간지러운 소리까지는 차마 할 수 없었다.

 

   “좋은 꿈이라도 꿨어?”

 

   말을 하지 않아도 키스 역시 자연스레 얼굴에 묻어나오는 행복은 숨길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더구나 디노 앞에서는.

 

   “예전에 너… 아니다.”

 

   적막한 인생에 홀연히 나타난 인생의 반려자. 이런 형편 좋은 이야기는 의외로 존재했으며, 그 스토리는 키스가 홀로 가정을 벗어난 이후, 한층 넓은 세상에서 디노를 만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뭐야? 알려줘~”

 

   말해봐야 서로 부끄러워질 얘기를 뭐하러. 키스는 느릿느릿 일어서 대답을 조르는 디노를 뒤로하고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분주한 하루가 될 오늘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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