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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에 다음 편 링크가 걸려있습니다.

 

 

 

 

 

   “제자리에 준비~”

   곧 터져 나올 총성을 지레 상상하고 키스는 벌써 인상을 찡그렸다. 체육대회라고 몸소 나서 땀을 흘릴 생각은 없었는데.



   체육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키스는 전혀 들뜨지 않았다. 하루 치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점만은 썩 나쁘지 않은 듯했으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세워진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의 종목에 참가’라는 조건을 요령 좋게 피할 궁리로 머리가 소란스러웠다.

   사실 궁리랄 것까지도 없었다. 순수한 실력을 보여서 선수로 발탁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예선 경기를 무성의하게 달리는 것이 키스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었다.

 

   보는 사람까지 의욕이 떨어지는 걸음걸이로 운동장을 서성인 덕분에 키스의 농땡이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키스는 무슨 종목 나가기로 했어? 나는 야구랑 피구랑 릴레이랑…”

   디노는 체육대회 몇 주 전부터 아주 들뜬 기색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온갖 종목에 참가하고 싶었으나, 스케줄 적인 한계와 다른 아이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으로 몇 자리는 자진해서 물러났다는 모양이었다. 키스는 턱을 괴고 지루한 듯 디노의 이야기를 듣다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나는 안 나가.”
   “응? 하지만 반드시 하나 이상은 나가라고…….”
   “엇…….”

   한 가지 이상의 종목에 참여하라는 룰과는 별개로, 키스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쉬웠던 디노는 키스의 동의 없이 곧바로 반장을 불러내 자리가 비어있는 종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실력을 겨루어 참가자를 선발하는 대회는 대체로 인선 정리가 마무리된 상태였다.

   “그럼 키스는 이거 어때?”

   팀플레이가 아니라 키스의 성의 없는 태도가 싸움으로 번질 일도 없고, 복잡한 경기 방식을 따로 기억하지 않아도 되고, 실력과 관계없이 가볍게 출전할 수 있는 종목. 

 

   물건 빌리기 경주였다.

   “제발 좀…….”



   키스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다리를 굴러 몸을 풀고, 달릴 자세를 잡았다.

 

 


   탕-

 

 


   총성과 동시에 키스는 뒷다리 힘으로 도약하듯 달려 나갔다. 다만, 빠른 다리만이 중요한 경기는 아니었으므로 키스는 불필요하게 속도를 내지는 않았다. 관건은 운 좋게 간단한 주제를 뽑을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키스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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